사모펀드 이야기 - "문앞의 야만인들"과 "자본주의 첨병들" 사이에서
- seoultribune
- 2024년 10월 24일
- 3분 분량

1980년대 미국 금융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는 RJR 나비스코의 적대적 인수합병이다. 당시 250억 달러에 달하는 이 인수는 단순한 기업 거래를 넘어 사모펀드와 대기업 간 권력 다툼의 상징이다. 이 사건을 생생하게 기록한 「문앞의 야만인들」은 탐욕과 권력의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해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우리에게 날카롭게 전달해 준다.
RJR 나비스코의 당시 CEO였던 로스 존슨은 기업의 주가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회사를 사적으로 인수해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 KKR과의 치열한 입찰 전쟁이 벌어졌고, 최종적으로 KKR이 나비스코를 250억 달러에 인수하게 된다. 단순히 회사의 매각을 넘어, 경영진과 투자자들 사이의 권력 다툼이 기업 내부의 이해관계와 엮이면서 극한의 경쟁을 낳은 것이다. 이 인수합병 전쟁은 기업 경영이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 권력 구조와 자본의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회사의 경영진과 사모펀드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회사의 운명을 저울질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장기적 비전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탐욕은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RJR 나비스코 사건은 사모펀드의 막대한 영향력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모펀드가 기업 지배권을 둘러싼 중요한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고, 그들의 인수 전략은 이후 많은 기업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모펀드가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고려하기보다 단기적인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나비스코 인수 과정에서도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고, 기업의 미래보다 경영진과 투자자의 단기적 이익만이 강조되었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사모펀드가 무조건 부정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모펀드는 특히 부실 기업이나 주가가 침체된 기업을 구조조정하거나 재편성하여, 그 가치를 되살리는 역할을 한다. 이런 경우, 사모펀드는 단순한 자산 매입자가 아니라, 자본 투입과 경영 효율화,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 많은 기업들이 경영 효율성 문제로 인해 위기에 처하거나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 사모펀드의 전문성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모펀드는 그들이 인수한 기업에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경영진 교체, 자산 매각 등을 통해 기업의 구조를 재편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자본을 투자하며,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더 많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실제로 많은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이 효율화 과정을 거친 후 성공적으로 재상장되거나 더 큰 수익을 창출한 사례도 많다. 사모펀드는 본질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그 대가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경제적 주체인 것이다.
「문앞의 야만인들」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과연 기업의 가치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기업의 목적이 단순히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더 큰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비스코 사건에서처럼, 기업 경영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미래를 내던질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들과 사회 전체에 전가된다.
오늘날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기업은 더 이상 단순한 이윤 창출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단기적 이익을 위해 장기적 가치를 희생하고 있다. 이는 나비스코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비판도 설득력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ESG 경영, 지속 가능성, 장기적 성장 등 새로운 화두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기업 세계의 탐욕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배주주의 무능력, 도덕적 불감증, 강성 노조의 불합리 등으로 기업의 미래가치와 주주의 이익이 훼손되는 기업도 적지않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의 경제와 기업 세계에서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RJR 나비스코의 사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사모펀드가 자본주의 첨병으로서의 역할과 순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서재욱 파트너 (에임브릿지 파트너스)
서울트리뷴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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